바람이 빠진, 아니 바람이 아예 없는 공이 통통 잘 튈 수 있을까요? 최근 미국의 유명 스포츠 브랜드 윌슨(Wilson)이 ‘에어리스 농구공(Airless Basketball)’의 시제품을 선보였습니다. 3D프린팅을 이용해 만들어진 이 농구공은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보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윌슨은 어떻게 업계 최초로 3D프린팅 농구공 제작에 성공했는지, 또 최근 스포츠 용품 분야에서 혁신 가능성을 보여준 적층제조 사례엔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3D프린팅 농구공, NBA 무대를 밟다
지난 2월 19일(한국 기준) 미국 유타주 비빈트 아레나에서 NBA 올스타전을 하루 앞두고 슬램덩크 콘테스트가 열렸습니다. 이 콘테스트에 참가한 선수 KJ 마틴(휴스턴 로케츠 소속)은 동료의 패스를 건네 받아 호쾌한 덩크를 내리 꽂았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들고 있던 공의 생김새가 조금 특이했습니다. 농구공 특유의 줄무늬는 그대로지만 대부분의 표면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드리블을 하면 통통 튀어오르는 탄성이 멀리서도 느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 ‘바람 빠진’ 공인데 말이죠.
마틴이 들고 있던 공이 바로 윌슨이 제작한 에어리스 농구공입니다. 아직은 시제품 단계지만 NBA 덩크 콘테스트에서 KJ 마틴 선수가 처음으로 시연한 것입니다. 마틴 선수는 인터뷰를 통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밝히며 “처음에 3D프린팅으로 농구공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상상이 안 됐는데, 실제로 보니 충격이었다. 공에 구멍이 나 있는데 잘 튕기고 가죽으로 만든 실제 농구공과 똑같이 느껴졌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3D프린팅 전문 3개사 협업, 신개념 농구공 탄생
현역 농구 선수가 인정한 윌슨의 에어리스 농구공 개발에는 총 3개의 회사가 참여해 협업했습니다. 3D 디자인 전문 업체 ‘General Lattice’, 3D프린터 제조업체 ‘EOS’, 후가공 전문업체 ‘DyeMansion’이 그 주인공입니다. 개발 초기부터 윌슨과 긴밀히 협력해 온 General Lattice는 설계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데이터를 통합 관리함으로써 바람 없이도 튀어오르는 최적의 농구공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완성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산업용 3D프린터 개발 및 제조업체인 EOS사가 자사의 SLS 방식 3D프린터를 이용해 농구공을 출력했습니다. EOS 관계자는 에어리스 농구공이 가지는 잠재적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훌륭한 기술 쇼케이스”라고 자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가공 전문 DyeMansion이 자사의 착색 기술(DeepDye)과 표면 처리 기술(VaporFuse)을 활용해 마감 작업을 진행해 농구공 외피를 매끄럽게 마무리했습니다. 그 결과 일반 농구공처럼 줄무늬를 가졌지만 벌집처럼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부풀릴 필요도 부풀릴 수도 없는 새로운 형태의 농구공이 탄생했습니다.
윌슨은 이와 같은 에어리스 농구공을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소재와 제조 방식 등을 조합하기 위해 수 년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특히 농구공처럼 통통 튀면서 형태를 유지하려면 내구성이 중요했습니다. 윌슨측은 현재 모델은 공의 무게나 크기, 리바운드 측면에서 정식 경기에 사용되는 농구공의 성능 기준을 거의 충족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직 시제품 단계이지만 머지않아 NBA 공인구가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스포츠 산업에 변화의 바람 몰고 온 3D프린팅
윌슨뿐만 아니라 스포츠 브랜드업계에서는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 방식인 3D프린팅 기술을 실제 제품에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디다스는 지난 2021년 3D프린팅 기업 Carbon과 장기 파트너십을 맺고 신발의 미드솔(안창과 겉창 사이에 들어가는 재질)을 3D프린팅으로 제작했습니다. 또한 안경 회사인 Marcolin Group과의 콜라보를 통해 무게가 20g에 불과한 3D프린팅 스포츠 안경을 한정 출시한 적도 있습니다.
자전거 안장을 3D프린팅으로 만든 사례도 있습니다. 독일의 디자인 회사 DQBD는 대표적인 글로벌 3D프린팅 회사인 스트라타시스와 협력해 맞춤형 자전거 안장을 생산했습니다. DQBD에 따르면 안장의 내하중 부품을 3D프린터로 대량생산해 리드 타임을 대폭 줄임으로써 수 천 만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DQBD의 Sebastasin Hess 최고경영자(CEO)는 3D프린팅에 대해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방식”이라며 향후 비즈니스 모델에서 적층제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3D프린팅은 앞으로 스포츠 산업에서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입니다. 농구공에 공기를 주입하지 않아도 된다면 농구공에 바람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수시로 채워 넣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3D프린팅 기술의 도입으로 앞으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편리해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