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파X코스포] 제조 스타트업 창업가 토크룸
온라인 제조 플랫폼 ‘캐파(CAPA)‘를 운영하는 에이팀벤처스(대표 고산)가 코리아스타트업포럼(대표 최성진, 이하 코스포)과 함께 제조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토크룸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마루360’에서 <창업가 토크룸> ‘대한민국에서 제조 스타트업으로 살아남는 법’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토크룸 행사에선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가 호스트로서 자신의 창업 경험을 소개하고 현장에 참석한 제조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평소 기업을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과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제조 스타트업 창업가들, 최성진 대표를 비롯한 코스포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애초 계획했던 2시간 일정이 끝나자 대관 문제로 회의실을 비울 수밖에 없었지만 참석자들은 한동안 회의실 밖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등 이번 행사에 열성을 보였습니다. 이번 토크룸 행사에서 오고간 얘기들을 캐파가 정리해 봤습니다.
제조 창업가라면 공감하는 말 “Hardware is Hard”
주최측인 코스포의 창업가 클럽 소개에 이어 참석자들은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와 함께 회사 및 서비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제조 스타트업을 운영한다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제조 분야는 다양했습니다. 최첨단 드론부터 가정용 헬스케어 로봇, IT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 의자 개발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것이죠.
이어서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가 20여 분 동안 본인의 창업 과정과 회사 운영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준비해온 자료와 함께 발표했습니다. 고산 대표는 먼저 제조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Hardware is hard(하드웨어는 힘들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제조 창업가들이 모인 만큼, 참석자들은 고 대표가 힘들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놓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금은 캐파(CAPA)라는 온라인 제조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지만 고 대표가 처음 회사를 창업했을 당시 에이팀벤처스는 3D프린터를 직접 만드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원가 산정도 제대로 못한 채 더 싼 가격에 외주로 제품을 만들고자 중국 심천을 헤맸지만 원가는 오히려 계속 올라갔다고 말했습니다. 고 대표는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초도 물량은 다소 손해를 좀 보더라도 빨리 만들어서 제품의 ‘마켓 핏(market fit)’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고 대표는 “온라인 제조 플랫폼 캐파를 서비스하기 전 하드웨어를 해봤기 때문에 지금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들의 고충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며 “외주 제조가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일인지 깨달았고,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외주 제조를 도와주는 외주 제조 플랫폼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벤처 1세대가 묻다 “국내에서 제조 플랫폼의 가치는?”
이어진 <라운드 토크> 순서는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다른 참석자에게 궁금한 점을 묻거나, 평소 고민해온 이슈들을 풀어놓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스스로를 ‘벤처 1세대’라고 소개한 IoT(사물인터넷) 개발업체 원오티의 박의수 대표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인맥 등 네트워크를 활용해 외주 제조 수요가 충족되고 있는데, 캐파와 같은 제조 플랫폼 서비스는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고산 대표에게 질문했습니다.
이에 고 대표는 “제조 쪽에는 ‘정가’라는 개념이 없다 보니 견적 편차가 엄청나다“며 “온라인 플랫폼이 이와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시켜주는 장점이 있다. 적어도 시장가를 확인하기 위해 이용하는 고객분들도 있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가치를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같은 회사 안에서도 실무자와 대표나 CFO의 (견적가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실무자는 기존 거래처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재무적인 요인 등을 고려해야 하는 대표는 입장이 다를 수 있고, 이런 부분을 제조 플랫폼이 개선해줄 수 있다는 것이죠.
국책 연구기관 협력 절실한데, 대기업에 우선순위 밀려
스타트업은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바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제품을 완성해야 합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외주 제조를 비롯해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죠. 기술 개발도 마찬가집니다. 이를 도와줘야 할 정부 산하 연구소들이 있지만, 막상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드론 라이팅쇼에 사용되는 드론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드론미디어의 김용철 대표는 먼저 PCB 설계가 잘못돼 공들여 만든 드론이 맥 없이 추락한 일, 목업(mock-up) 단계까지 문제가 없던 드론이 사출 시 재료가 달라지는 바람에 역시 날지 못하게 된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전문성을 갖춘 정부 산하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추진했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정부 산하 연구소에) 센서 개발을 의뢰했는데, 정부 과제로 선정되지 못하면 개발을 할 수가 없더라”고 말했습니다.
가정용 헬스케어 서비스로봇을 개발하는 에스지메디로보의 권형준 대표도 “(정부 출연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레퍼런스를 쌓기 위해 대기업 프로젝트를 우선순위로 하려고 하다 보니 스타트업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최성진 코스포 대표는 “바우처 사업 등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공감, 제조 스타트업 투자유치의 어려움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제조 창업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제조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VC(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기가 너무 어렵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마존(Amazon)이 제공하는 AI(인공지능) 비서 ‘알렉사’의 시스템통합(SI) 파트너사인 아이콘에이아이의 신민영 대표는 VC 자금이 플랫폼이나 핀테크 쪽에 지나치게 편중된 점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신 대표는 “제품을 2만개 정도만 계약하면 (제조 스타트업은) 투자를 안 받아도 충분히 자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그 정도 계약을 따내려면 시제품 다양화 및 업그레이드, 해외 전시회 참가 등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타 스타트업이 광고에 투입할 정도의) 자금만 있으면 충분히 시제품을 만들고 해외 전시회까지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훨씬 적다고 생각한다”며 “부디 제조 쪽에 포커스를 두고 이들이 잘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업 현실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김용철 드론미디어 대표는 “신용보증기금에서 설비투자를 해준다는데 드론은 생산설비가 아니라서 안 된다더라”며 “생산설비의 개념을 (드론 장비나 기술 특허 등으로) 확충해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규정상 생산설비는 담보로 잡았다가 다시 팔 수 있는 것만 해당되기 때문에 제조 스타트업이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담보로 인정받지 못해 대출이 막혀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단기 공간 지원, 투자 연령대 다양화에 대한 요구도
이 외에도 이날 현장에서는 제조 스타트업을 위한 맞춤형 지원 방안의 필요성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실험을 위한 대규모 공간을 단기간 임대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김용철 드론미디어 대표는 지방에 있는 산업단지는 한두 달 사용할 수 있더라도 “엔지니어들이 수도권을 떠나 장비 싣고 트럭 타고 내려가려면 8시간 이상 시간이 걸리니 이용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복잡하지 않게 쉬운 방법으로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스마트 배터리 등을 개발하는 루나커머스의 송성영 대표는 38세 이하의 청년에게만 정부 지원이나 투자가 집중되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송 대표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생존을 위해 플랫폼 사업을 (병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창업가들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창업가들을 만나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듯했습니다.
드론 전문 스타트업인 만물공작소의 정봉현 대표는 서울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경남 사천에서 기찻길에 올랐습니다. 통증 관리 솔루션 제품인 ‘시리어스’를 개발, 서비스하는 파이헬스케어의 박승환 대표는 “제조 창업자들끼리 막상 각자의 경험과 고충을 공유하는 자리가 드물다”며 “코스포 쪽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에이팀벤처스의 고산 대표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나온 안건들 중엔 정부 정책에 반영해야 할 사안들이 많은 것 같다”며 “중요한 건 이러한 목소리를 다 함께 지속적으로 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정됐던 2시간이 금세 지나고 행사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자 창업가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참석자들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앞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함께 고민을 공유하고 필요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습니다.
*창업가 토크룸 참석자
- 에이팀벤처스_고산 대표
- 코리아스타트업포럼_최성진 대표
- 드론미디어 김용철_대표
- 아이콘에이아이_신민영 대표
- 레니프_최병헌 대표
- 루나커머스_송성영 대표
- 만물공작소_정봉현 대표
- 에스지메디로보_권형준 대표
- 원오티_박의수 대표
- 파이헬스케어_박승환 대표
- 밸류업솔루션_정충호 대표
- 네오에이블_조기한 부대표(에이블디자인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