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텍’은 기구설계와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고객의 제품 개발을 도와주는 업체다. 캐파(CAPA)의 기구설계 분야 파트너이자, 캐파를 통해 종종 외주 제조를 맡기는 주요 고객이다. 어떤 제품을 설계하든 이용하는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시한다는 핸텍의 노진문 대표는 “어떤 제품을 개발하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모토”라고 말했다.
1970년대 경북 예천의 한 시골마을. 그 동네에 텔레비전은 딱 한 대였다. 흑백 텔레비전을 2시간 보려면 20원씩 내야 했다. 동네 아이들은 기꺼이 20원씩을 주머니에 챙겨서 모였다. 마당 넓은 집 마루 위에는 네모난 텔레비전이 늠름한 자태를 뽐냈다. 곧, 텔레비전 화면에 ‘마징가 Z’가 나타났다.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Z는 로케트 주먹으로 악당을 무찔렀고 아이들은 환호했다. 당시 마당에서 함께 환호하던 아이들 중엔 ‘핸텍(HandTech)’의 노진문 대표도 있었다. 아이들이 마냥 환호성을 지를 때 어린 노 대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내가 저 로봇을 만들어야지.’
아쉬운 대로 수수깡을 이어 붙여 로봇 인형을 만들었다. 로봇 팔과 로봇 다리를 손으로 움직였다.
‘마징가 Z의 무쇠 팔, 무쇠 다리는 스스로 움직이던데..’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노 대표는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가 궁금해졌다. 학교가 끝나면 ‘쓰레기장’으로 등교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기계들을 줍기 위해서다. 꼬마에게 버려진 기계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교과서였다. 버려진 라디오, 선풍기를 주워서 고사리 손으로 기계들을 분해하고 원상태로 조립했다. 가끔은 “재수가 좋아서” 마징가 Z가 나오던 텔레비전도 주웠다. 마징가 Z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텔레비전은 특별히 구석구석 살폈다.
로봇과 기계를 좋아하던 소년은 현재 14년차 제조업체 대표로서, 또다른 로봇과 씨름하고 있다. 아래는 ‘핸텍’ 노진문 대표와의 일문일답.
Q> ’핸텍’에 대해 소개해달라
“’핸텍’은 제품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전자 기기, 의료 기기, 자동화 기기 등을 개발하고 있다. 전문 분야는 기구 설계와 프로그래밍이다.”
Q> 주로 어떤 제품들을 만드나
“설립 초기에는 의료기기를 주로 만들었다. 피부 미용기기로 진동 마사지 자극을 줘서 화장품이 피부에 잘 스며들도록 하는 장비나 점을 빼는 레이저 장비 등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차량용 카메라의 프로그래밍 작업을 했다. 자율주행차가 인식하는 시각 데이터를 분석해 안전사고를 방지하게 돕는 기기다.
카메라는 도로의 굴곡, 장애물, 사람의 형태와 같은 데이터를 인식한다. 컴퓨터가 이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차량 속도를 조절하거나 차선을 변경하게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피부 미용 의료기기나 자율주행차나 공통점이 있다. 결국 이용하는 사람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이다.”
Q>회사 영문 이름이 ‘HandTech’다. 어떤 의미인가
”핸텍(HandTech)이란 이름은 휴먼(Human) 앤(And)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어떤 제품을 개발하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게 제 모토다. 이런 모토를 설정한 지는 벌써 20년이 넘은 것 같다.”
Q> 회사를 설립하기도 전인데, ‘사람 중심의 철학’이 생겨난 계기가 있나
”회사를 차리기 전에 자동화 기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때는 회사원이었으니 회사가 만들라는 대로 만들었고, 회사가 원하는 대로 로봇을 만들었다. 문득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서 알았다. 회사의 방침을 따랐을 뿐인데,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로봇을 찍어내고 있었다. 내가 만든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직접 봤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로봇도, 사람도 잘못한 건 없었지만 결과가 그랬다. 로봇과 사람이 함께 살 방법을 그때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
자신이 만든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을 보고 괴로워했던 노진문 대표. 그에게서 원자폭탄 개발의 주역이었지만 훗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러셀-아인슈타인 선언(The Russel-Einstein Manifesto)’을 통해 인류에게 ‘인간다움’을 당부했던 아인슈타인의 고뇌가 느껴졌다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
“We appeal as human beings to human beings: Remember your humanity, and forget the rest. If you can do so, the way lies open to a new Paradise; if you cannot, there lies before you the risk of universal death.”
(인류 구성원으로서 인류에게 호소합니다. 인간다움을 상기하십시오. 나머지는 잊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전인류가 멸종할 위험이 우리에게 닥칠 지 모릅니다.)
-‘러셀-아인슈타인 선언(The Russel-Einstein Manifesto)’ 중에서
Q> 로봇을 개발하면서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하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한계는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화 로봇 개발은 사람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설정돼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로봇이 언제나 사람을 (일방적으로) 대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한 산업 현장에 사람 대신 투입돼 생명을 지키는 로봇도 있고, 몸이 불편한 사람의 신체 일부가 되어 삶을 되살리는 로봇도 있다.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로봇도 얼마든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들을 잘 살 수 있게 만드는 로봇을 만들고싶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생각은 국민학교 3학년 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아 일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어쩌겠나. 가치관이다. 바꿀 수 없다.”
흑백 텔레비전 속 ‘마징가 Z’ 보며 품은 꿈···”사람 돕는 로봇 만들겠다”
20여년 매일 4시간씩 기술 공부, “로봇 연구하려면 4시간도 부족해요”
Q> 캐파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핸텍’은 기구 설계와 프로그래밍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서 제조·가공하는 작업을 (외주로) 맡길 업체가 필요하다. (외주) 업체를 찾던 중에 캐파(CAPA) 서비스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 다양한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캐파의 장점이다.
특히 캐파는 제조 프로세스 상에 놓여 있는 업체들이 유기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구설계 같은) 특정 단계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다음 단계를 진행할 파트너를 캐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캐파가 (고객은 물론) 파트너에게도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주는 셈이다. 캐파가 제조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Q> 캐파(CAPA)를 통해 주문한 대표적인 제품엔 어떤 것이 있나
”자율주행차의 차량용 CPU 케이스와 AP(Access point)다. CPU 케이스는 플라스틱 시사출로 만들었고 AP는 알루미늄 CNC 가공으로 만들었다. AP는 자율주행차가 수집한 정보를 정제해서 취합하는 역할을 한다. 자율주행차가 다루는 데이터는 거리와 온도, 움직임 등 다양한데, 이 데이터들이 서버로 옮겨져야 컴퓨터가 분석할 수 있다. 이때 불필요한 데이터까지 서버로 옮겨지면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 AP가 데이터를 적절히 걸러냄으로써 서버의 과부하를 방지하고 컴퓨터의 작업을 용이하게 돕는 것이다.
케이스의 경우 사출 방식의 특성상 찍어낼 수 없는 구조가 있었고, 정확한 모양이 나오지 않는 구조도 있었는데, 파트너였던 ‘티어원’에서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불량 가능성이나 형상에 대해 꼼꼼히 상담하며 구조를 수정했고 결과적으로 완성도 높은 제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의뢰한 고객의) 납기가 촉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티어원에서 납기를 잘 맞춰주셨다.”
Q> 평소 까다로운 제품을 많이 수주하는 것 같다
”여러 업체에서 해결 못한 제품이 핸텍을 만나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많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지막에 ‘핸텍’을 찾아주시는 고객 분들이 처음에는 ‘마지막 업체’로 찾아주시다가 이후에는 ‘첫 번째 업체’로 찾아주시더라.”
Q> 핸텍의 핵심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평소 공부를 계속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때부터 20여 년이 넘도록, 지금도 하루에 4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한다. 제조와 로봇, AI, 신기술, 트렌드까지 가리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공부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고객 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20년만 어림잡아도 매일 4시간이면 약 3만 시간에 이른다.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는 데 필요하다는 ‘1만시간’을 3번이나 채우는 시간이다. 묵묵히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온 노진문 대표의 근성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를 움직여 온 원동력을 물었다. 시간의 무게에 비해 그를 움직이는 원리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마징가Z’를 보며 로봇 개발자의 꿈을 키웠다던 소년. 굳이 마징가Z가 아니었더라도 그는 제조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조를 좋아서 한다”는 노진문 대표. 그만의 필살 ‘로케트 펀치’는 다름 아닌 제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