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A 고객경험 인터뷰] 리필리
지난 1월 20일 미국 핵과학자회(BAS)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가 3년 연속으로 ‘100초 전’을 유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지구 종말 시계는 인류가 당면한 실존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194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주축이 돼 창설했습니다. 지구 멸망 시간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핵 위협과 기후변화 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년 지구의 현재 시각을 발표합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경영은 기업 활동도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설립된 스타트업 기업 중에서는 ESG를 핵심 사업으로 내세우는 곳들도 있습니다. 종이팩 패키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리필리(REFEELY)‘도 그중 하나입니다.
리필리는 ‘가족과 지구를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다’는 사명 아래 실제 가정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지구에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기업입니다.
‘왜 우유만 종이팩에 담을까’
“종이팩에 우유나 주스 말고 다른 액체를 담을 순 없을까?”
리필리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 물론 리필리 이전에 대기업을 포함한 몇몇 기업들이 종이팩에 제품을 담아 생산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종이팩에 담자 물질이 새거나 터지는 등 안전성과 보관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비용도 문제였습니다. 기존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팩 용기를 사용하도록 설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선 보통 2~3년의 시간과 50억 원 이상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설비를 교체한 다음에도 문제입니다. 기존 플라스틱 제품보다 종이팩 제품을 생산하는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친환경이란 명분만으로 플라스틱을 종이팩으로 교체하기엔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너무나 큰 대가가 따르는 것이죠.
자체 개발로 플라스틱보다 싸게 종이팩 생산
국내 플라스틱 포장재의 시장규모는 무려 44조원에 육박합니다. 생활용품, 식료품, 화장품, 의약외품 등 다양한 제품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팔리고 있습니다. 리필리는 이 많은 플라스틱 용기를 종이팩으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종이팩은 쓰고 나면 화장지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폐기할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또한 플라스틱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리필리는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온도와 습도, 압력 등의 환경하에서 5천 번에 걸친 테스트를 실시해 종이팩의 재질별로 어떤 화학물질이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는지 확인해 이를 데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이 담고자 하는 제품의 성분과 원료에 따라 맞춤형 종이팩을 제작해 안전하게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종이팩 도입의 가장 큰 장애였던 ‘단가’ 문제 또한 해결했습니다. 리필리는 국내 최초로 종이팩 바닥 부분을 접합하는 초음파 접합법 방식의 종이팩 기계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이에 따라 생산 속도가 기존 기계를 사용할 때보다 개당 1.2초 빨라졌고, 전력 소모를 50%가량 줄였습니다. 그 결과 플라스틱보다 더 싸게 종이팩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사업 초반이라 주문 수량이 적다 보니 플라스틱과 비교해 단가 차이가 크지 않지만, 수량이 늘어날수록 플라스틱에 비해 생산 단가가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리필리가 캐파를 찾은 이유는?
이처럼 리필리는 ‘종이팩’을 제조하는 회사입니다. 그런 리필리가 주로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재료로 하는 외주 제조를 도와주는 캐파(CAPA)의 고객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잘 만든 종이팩이라 하더라도 종이팩에 담긴 제품이 조금이라도 새어나가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선 ‘플라스틱 뚜껑’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플라스틱 뚜껑이 친환경 제품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종이팩을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한 최상의 조합입니다.
리필리는 회사의 핵심 경쟁력인 종이팩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뚜껑은 외주로 제조한다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진 해외에서 수입했지만 안전성 등을 고려해 앞으로는 국내 생산이 가능한 외주업체를 찾을 계획입니다. 리필리가 온라인 제조 플랫폼 캐파(CAPA)의 문을 두드린 이유입니다.
리필리의 기업 철학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식으로는 이 세계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기업들이 리필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세제 브랜드 ‘오뛰르(otture)’를 출시한 기업 오뚜기, 편백수 스프레이와 세탁 세제 등을 판매하는 ‘레스벗그리너(less but greener)’ 등이 리필리의 주요 고객입니다.
친환경 제조로 지구를 살리고자 하는 리필리. 캐파가 서울 마포에 있는 리필리 본사에서 이 회사 김재원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종이팩에 담을 수 있는 제품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리필리(REFEELY)는 기존에 우유 용기로만 알려졌던 종이팩에 생활용품, 화장품, 의약외품 등을 담아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화학물질이 포함된 생활용품을 담았을 때 새거나 터지는 기존 종이팩의 문제점을 수천 번의 테스트와 데이터화를 통해 해결했습니다. 현재 파트너사의 주문을 받아 주방세제와 세탁세제 등의 생활용품 등을 OEM(주문자상표부착)과 ODM(제조자개발생산)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Q. 종이팩이 포장재로 쓰기엔 불안하지 않나요
“플라스틱만큼 견고하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생활용품을 담을 경우 1년 이상 보관 및 유지가 가능합니다. 습도가 높은 욕실에서도 형태가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잘 유지되고요.”
Q. 종이팩을 활용하는 상품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첫 번째로 담은 제품은 ‘레스벗그리너(less but greener)’란 회사의 편백수 스프레이입니다. 리필(refill)팩에 편백수 제품을 담았습니다. 오뚜기에서 만든 주방세제 브랜드 ‘오뛰르(otture)’ 제품도 리필팩에 담았습니다. 그 외에도 직접 제품을 담아 판매할 수 있도록 프랜차이즈 카페에 ‘공팩’을 납품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페인트, 물감, 손소독제 등 다양한 제품을 종이팩에 담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리필리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종이팩 제품 기계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이 기계를 이용해 기존 열 접합 방식으로 만들던 종이팩을 초음파 접합 방식으로 바꿔 생산 속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또한 소요되는 전력 비용도 절감시켜 생산단가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Q. 비즈니스 모델과 구체적인 제조 과정이 궁금합니다
“리필리는 제조 기업입니다. 기업 고객의 요청에 따라 종이팩 제품을 위탁 생산해 판매합니다. 고객의 의뢰를 받으면 먼저 판매할 제품의 성분에 따라 포장할 종이팩을 재질별로 테스트해 분석합니다. 그 후 ‘종이팩 성형-충전-실링’ 작업을 진행하고 리필리가 개발한 공정에 따라 생산합니다.”
Q. 재활용하면 플라스틱이 떠오르는데요, 종이팩도 회수가 잘 되나요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각 기관마다 조사 결과가 다른데, 평균 22%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종이팩 재활용률은 15%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이팩은 제대로 수거만 된다면 사실 화장지나 페이퍼타올로 100% 재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활용률이 낮은 이유는 앞서 말했듯 수거가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유나 주스 외 다른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다 보니 폐기량이 적어 종이팩 수거함 자체를 많이 볼 수 없습니다. 다행히 환경부에서 세종시와 부천시 등에서 종이팩 수거함 설치 시범사업을 운영하면서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서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희 리필리는 가족과 지구를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듭니다. 가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생활용품에 ‘행복’과 ‘평안’이라는 가치를 담아 전달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지구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각양각색의 팀원들이 모여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희 리필리에는 미국, 일본, 스웨덴, 르완다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미국 L.A에 있는 대형 B2B 공장에서 생산 총괄을 담당했던 팀원이 현재 리필리의 생산 프로세스 전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 대기업에서 25년간 공장장으로 계셨던 분이 기계 개발 엔지니어로 합류했습니다.
르완다에서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던 분은 저희 팀의 환경적 가치에 공감해주셔서 현재 B2B 영업을 담당하고 있고요. 스웨덴에서 디자인 에이전시에 근무했던 분은 현재 제품 및 브랜딩 디자인과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회사 경영과 운영을 담당하는 분 또한 직접 창업해본 경험이 있는 인재입니다.”
Q. 어떻게 캐파를 이용하게 되었나요?
“종이팩을 완벽하게 틀어막을 플라스틱 뚜껑 때문입니다. 현재는 해외에서 전량 수입 중이지만, 아무래도 해외 수입보다는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업체와 진행하는 것이 사업 안전성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직까지 플라스틱 뚜껑은 친환경이 아닙니다. 하지만 종이팩과 단일 소재로 되어 있는 플라스틱 소재로 된 뚜껑을 사용하면 재활용에 용이합니다. 이 때문에 종이팩과 동일하게 PE 코팅이 되어 있는 뚜껑을 사용해 회수율을 높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현재는 세제와 같은 생활용품을 종이팩에 담아 생산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추가) 생산시설을 갖춰 화장품은 물론 의약외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종이팩에 담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 나아가 식료품도 종이팩에 담을 수 있도록 생산설비를 추가로 늘려갈 예정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을 리필리의 종이팩 솔루션으로 대체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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