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제조업 혁명-⑤·끝] 누가 제조업의 ‘롱테일’을 차지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21세기에 접어들면서 3D 프린팅 기술의 특허 만료, 제조의 디지털화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제조업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졌던 제조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 제조를 향한 개인의 관심을 촉발시켰습니다. 또한 이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온라인 상에서 제조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제조업 플랫폼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제조업 플랫폼 시장은 3D 프린팅 중심 모델(1세대)온라인 주문제조 모델(2세대)에 이어 캐파(CAPA)처럼 고객과 제조업체를 ‘직접’ 연결해주는 3세대 모델공존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플랫폼의 시대가 열리다> 참조 편의상 세대 구분을 하긴 했지만 특정 세대의 모델이 반드시 시기적으로 늦게 탄생했거나 다른 모델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현재 제조업 플랫폼의 주류는 다양한 가공 분야의 주문을 플랫폼의 관리(게이트키핑)를 거쳐 생산해내는 2세대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제조업 플랫폼 분야에서는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절대 강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제조업 플랫폼 시장에도 삼성이나 애플과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체들간의 경쟁 못지 않게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제로 최근 기존 기업과 제조업 플랫폼 간, 혹은 플랫폼끼리의 합종연횡이 활발히 일어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막 오른 제조업 플랫폼 전쟁 

3D 프린팅에 특화된 제조업 플랫폼인 스컬프테오(Sculpteo)는 지난 2019년 독일의 글로벌 화학업체인 바스프(BASF)에 인수됐습니다. 역시 3D 프린팅 중심 플랫폼으로 애초 네덜란드의 필립스에서 분사됐던 쉐이프웨이즈(Shapeways)는 지난 4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의 합병을 통한 뉴욕증시 상장 계획을 밝혔습니다. 쉐이프웨이즈는 합병회사의 기업 가치가 6억 달러(약 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막강한 자체 설비를 가진 2세대 플랫폼 프로토랩스(Protolabs)는 올해초 2억8000만 달러(약 3300억원)를 들여 3D허브스(현 허브스)를 인수했습니다. 이번 인수를 통해 프로토랩스는 허브스가 전세계적으로 보유한 240여개 제조업 파트너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제조업 플랫폼에 대한 투자 열기 또한 뜨겁습니다. 일본의 제조업 플랫폼 캐디(Caddi)는 최근(2021년 8월말) 7300만달러(약 8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7년에 창업한 캐디는 최근 1년 새 주문량이 6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창업 4년만에 기업가치를 4억5000만달러(약5200억원) 수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이 회사 창업자인 가토 유시로 CEO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91억달러(약 10조원)의 매출액을 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와 같은 포부는 단지 일본의 막강한 제조업 기반에만 의존하지 않고 캐디를 글로벌 플랫폼으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최근 7300만달러(약 850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일본의 제조업 플랫폼 ‘캐디(Caddi)’ &lt;사진: 캐디&gt;

 

이처럼 전세계 제조업 플랫폼들이 인수합병과 투자 등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은 단지 자국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 아닙니다. 이는 자사 플랫폼을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키우기 위한 전초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조업계의 아마존을 꿈꾸는 제조업 플랫폼 간에 벌어질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입니다. 

 

“대기업과 소기업이 함께 제조업 지형 바꿀 것” 

IT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 크리스 앤더슨은 또다른 저서 <메이커스>에서 미국의 제조업 마켓플레이스 업체인 MFG를 소개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MFG는 캐파처럼 제조업체와 고객을 직접 연결시켜주는 3세대 제조업 플랫폼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대부분 플라스틱 울타리, 금속 막대기, 고정 기구, 특수 케이블 같은 따분한 물건을 제조하는 계약이 체결되지만 미치 프리(*MFG 창업자, 아래 사진)는 이런 계약을 지켜보면서 현재 제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찰할 수 있다. 이 사이트를 미치 프리처럼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누가 어느 곳에서 어떤 물건을 제조하는지 알 수 있다.”

앤더슨은 제조업 플랫폼을 통해 축적되는 막대한 제조업 관련 데이터에 주목했습니다. 참고로 아마존(Amazon) 창업자 제프 베조스 MFG를 통해 자신이 세운 민간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의 부품을 일부 조달하다가 직접 이 회사에 투자해 주요 주주가 되었습니다. 일찌감치 제조업 플랫폼의 잠재력을 눈여겨 본 것입니다. 

 

앤더슨은 자신의 또다른 저서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롱테일 경제학(The Long Tail>에서 인터넷 시대에는 전통적으로 매출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상위 20% 제품 외에 매출 순위에서 긴 꼬리에 해당하는 하위 80%의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롱테일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과거와 달리 온라인을 통해 하위 80% 제품에 대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기 때문입니다. 

 

앤더슨은 또다른 저서 <메이커스>에서 제조업에서의 ‘롱테일의 법칙’을 언급합니다. 그는 앞으로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제조업 분야에서 틈새시장에 집중하는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근로자 수십만 명을 고용해 대량생산 제품을 파는 대기업이 하나 있으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새로운 소기업 수천 개가 공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소기업이 함께 제조업계의 지형을 바꿀 것”이라며 “앞으로 사물의 롱테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몸통에 해당하는 소수의 대기업이 좌지우지했던 제조업 시장에서도 다수의 소규모 기업들이 형성하는 롱테일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들 꼬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데에는 소규모 기업들을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제조업 플랫폼의 역할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조업 ‘롱테일의 법칙’, 꼬리가 몸통 흔들까? 

최근 제조업 플랫폼들이 합종연횡에 나선 것도 이처럼 제조업에서의 ‘롱테일의 법칙’에 주목한 이들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꼬리로 몸통을 흔들 채비에 나섰다고 할까요. 

 

특히 현재 주류인 2세대 제조업 플랫폼들은 구조상 단기간에 규모를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직접 생산을 담당하거나, 고객과 제조업체 사이를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제조를 담당하는 파트너 업체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관리 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파트너업체를 발굴하고 확보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고객 수요 증대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 입장에서는 경쟁사를 인수합병하는 것이 단기간에 몸집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고객과 제조업체를 직접 연결하는 3세대 모델은 여타 플랫폼 기업들이 그렇듯 급격한 고객 수요 증가에도 비교적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직접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 부담이 적은 까닭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3세대 모델은 플랫폼으로서의 이점을 누리기에 적합하다는 평가입니다. 즉, 플랫폼 참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경우 거기에서 오는 막대한 데이터가 또다른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낳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서비스와 소비자의 편익이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제조업의 특성상 제조업체에서는 이와 같은 플랫폼 모델이 적합하지 않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제조업 생산품은 공산품과 달리 제조업체의 역량에 따라 품질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2세대 플랫폼처럼 중간에서 전문가가 이를 관리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타 플랫폼처럼 고객들의 평가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업체들간에 옥석 가리기가 이뤄질 수 있겠지만, 초기에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자칫 값싼 견적서를 남발하는 업체들만 참여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에 이를 우려가 있습니다. 

 

3D 프린팅 특허 만료에서 촉발돼 메이커스 운동 등을 거치며 제조업 플랫폼의 출현을 낳은 21세기 제조업 혁명은 이제 제조업 플랫폼을 통해 또다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고객과 제조업체를 두고 중간에서 품질을 관리해주는 2세대 모델과 양측을 직접 연결시켜주는 3세대 모델 가운데, 누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 제조업계의 아마존이 될 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전개될 제조업계의 지각 변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층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줄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조업 플랫폼 캐파(CAPA) 역시 국내외 제조업 혁신의 선봉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1세기 제조업 혁명·끝>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

– 피터 드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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