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불꽃에 꽂혀 한국의 ‘스페이스X’를 꿈꾸는 학생들

[CAPA 고객경험 인터뷰] 어비셜 항공우주

어비셜 항공우주의 로고(사진: 어비셜 항공우주)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 탐사기업 ‘스페이스X’는 항공우주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스페이스X는 초대형 로켓 ‘팰컨9(Falcon 9)’의 발사를 통해 로켓 재활용의 시대를 개척했습니다. 그동안 로켓은 발사하면 모두 공중분해되어 사라지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팰컨9의 1단 발사체는 이미 수차례 재활용된 발사체들입니다.

스페이스X의 성공은 기술적 성과뿐만 아니라 우주개발의 주도권을 국가에서 민간으로 가져오는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민간 우주개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우주개발 스타트업인 이노스페이스가 올해 국내 첫 민간 개발 시험발사체인 ‘한빛-TLV’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우주 개발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우주로 로켓을 쏘아올리는 일은 여전히 범접하기 힘든 천상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민간 항공우주 개발업체라 하더라도 장기간 정부 기관에서 경력을 쌓았거나 관련 전공 분야의 석박사급 연구인력이 주축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상식에 도전하며 ‘한국의 스페이스X’를 꿈꾸는 이들이 있습니다. 민간 항공우주 연구 조직인 ‘어비셜 항공우주(Abyssal Aerospace)’의 연구원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20여 명의 연구원들은 오로지 ‘로켓이 좋아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연구원 대다수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학생들이 주축이 된 연구조직이 전문가들도 하기 힘든 로켓을 개발하고 발사할 수 있는 걸까요? 어비셜 항공우주의 이재정 연구소장을 직접 만나 그 비결과 이들이 꿈꾸는 대한민국 항공우주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이재정 소장은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참고로 어비셜 항공우주는 로켓에 사용되는 부품 일부를 온라인 제조 플랫폼 캐파(CAPA)를 통해 조달하는 캐파 애용자입니다.

어비셜 항공우주의 연구원들(사진: 어비셜 항공우주)

현 대표가 중학생 때 설립, 목표는 “직접 로켓 만들자”

어비셜 항공우주는 지난 2017년 현 강준서 대표가 ‘우주로 가는 발사체를 만들자’라는 뚜렷한 목표 아래 만든 연구 단체입니다. 설립 당시 강 대표의 나이는 14세로, 당시 중학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강 대표는 초등학생, 중학생 때부터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과 물리를 독학할 정도로 비상했던 소위 말하는 천재과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이재정 연구소장은 “강 대표가 잘못된 부분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확고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리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어비셜 항공우주에는 고등학생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있습니다.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모였지만 “로켓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패기와 열망만큼은 모두 동일합니다. 소개로 들어오는 팀원이 있는가 하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비셜 항공우주의 SNS로 유입된 경우도 많습니다.

극저온 시험 설비의 점화 테스트(사진: 어비셜 항공우주)

로켓 불꽃에 꽂힌 사람들, 추진제 직접 제작 나서

어비셜 항공우주의 연구원들은 농담처럼 “로켓에서 나오는 불꽃 하나 보기 위해 모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도전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실제로 로켓에서 나오는 불꽃을 직접 보기 위해 수많은 실험과 도전을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17년~2020년에 추진했던 ‘헥터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인공당류를 이용한 고체추진제 기반의 음속 발사체를 발사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실 인공당류를 동력으로 이용하기로 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가 컸습니다. 인공당류를 이용한 추진제의 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로켓 추진제의 재료로는 질산칼륨과 제로콜라에도 들어가는 소르비톨이 사용됩니다. 이 둘의 비율을 65:35로 녹여서 굳히면 ‘로켓캔디’라고 불리는 추진제가 됩니다. 이 추진제를 이용해 발사체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헥터 프로젝트입니다.

사진: 셔터스톡

2020~20221년에는 과염소산암모늄을 기반으로 하는 APCP 고성능 고체추진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APCP란 추진제의 한 종류로, 여기서 AP는 과염소산암모늄을 나타내는 약자입니다. 추진제는 연료와 산화제를 합친 것으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름 같은 연료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로켓을 높이 올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추진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인공당류를 이용한 추진제보다 훨씬 더 출력이 좋고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료가 비싸고 구하기 힘들다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비셜 항공우주 팀은 과염소산암모늄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여기에 고무 재질의 연료와 경화제를 사용해 추진제를 만들고 연소 시험을 했습니다. APCP는 실제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만드는 로켓의 고체 부스터에 들어가는 연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발 중인 ASLV-L1: Orca 우주발사체 모델링(사진: 어비셜 항공우주)

내년 하반기 액체추진 로켓 발사, 목표는 우주 고도

2023년 현재 어비셜 항공우주는 메테인과 산소를 이용하는 액체추진제 엔진을 개발하고, 이를 운용하기 위한 기반 설비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 고체추진제에 한계를 느껴 액체추진제로 넘어오게 된 것인데요. 일반 기업이 아닌 대학교 동아리 차원에서 액체 연료 개발을 시도한 곳은 한 곳도 없다고 합니다.

결국 어비셜 팀은 최근 메테인과 산소를 재료로 하는 액체추진제 엔진을 만들어 점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는 기술 검증 단계에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실제 출력 테스트를 하기 위한 설비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내년 하반기에는 실제로 발사체를 만들어 발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어비셜 팀은 이번에 개발한 극저온 메테인-산소 추진제를 사용한 우주발사체를 고도 100km 이상의 우주 공간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우주발사체는 직경 0.5m, 높이 5.1m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도 100km라는 수치는 대한민국 법률상에서 우주로 인정하는 해발고도입니다. 이 지점에 진입하면 명실상부하게 우주 공간에 들어간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편리하게 외주제작할 순 없을까?’ 캐파에서 답을 찾다

로켓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높은 정밀도가 요구됩니다. 이 때문 밀링, 선반 등 정밀한 CNC 가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이론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이러한 부품을 규격에 맞게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외주로 부품을 제조해야 했던 어비셜 항공우주가 캐파를 이용하게 된 이유입니다.

어비셜 항공우주는 로켓 제작에 진심인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조직입니다. 연구원들이 거주하는 곳이 각기 다르다 보니 대부분의 업무는 온라인으로 이뤄집니다. 하지만 그동안 로켓 부품을 제작하는 일만큼은 온라인으로 처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직접 가공할 공장을 찾아다니며 부품을 조달했는데, 공장엔 누가 갈지를 정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고 합니다.

‘외주 제작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좀 더 편리하게 맡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온라인에서 외주 제조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캐파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제는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가능해 견적 비교부터 발주를 넘어 완성품을 받을 때까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비셜 항공우주가 액체 출력기를 시연할 때 사용한 어댑터 등이 캐파에서 견적을 의뢰해 조달한 사례입니다. 최근엔 논문 작성용으로 시험 출력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 출력기 제작에 필요한 부품 대부분을 캐파를 통해 의뢰했을 정도로 캐파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캐파가 우리나라 항공우주 분야에도 기여를 하고 있는 줄은 저희도 몰랐습니다.

다음은 어비셜 항공우주의 이재정 연구소장과 나눈 인터뷰를 문답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로켓 개발을 위한 열정으로 뭉친 비상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마주하니 대한민국 항공우주의 미래가 더욱 밝게 느껴집니다.

개발 중인 ASLV-L1: Orca 우주발사체 모델링(사진: 어비셜 항공우주)

Q. 어비셜 항공우주는 어떤 조직인가요

“프로젝트에 따라 세부 목표가 달라지긴 하는데요, 궁극적으로는 ‘우주로 가는 발사체를 만들자’라는 목표 아래 모든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Q. 우주 발사체를 만들겠다는 꿈은 언제부터 꾸게 됐나요

“다른 분들은 어떤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나로호’가 발사되던 모습을 TV 생방송으로 봤던 기억이 강렬했어요. 그때부터 로켓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아마 다른 분들도 다양한 로켓들이 발사되는 영상을 보면서 비슷한 꿈을 키우지 않았을까 싶어요.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전공 과목이 점점 심화되면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다른 연구원 분들도 소개해주세요

“저희 연구소에 책임연구원 두 분을 소개할게요. 먼저, 송왕림 연구원은 이제 곧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윤도경 연구원은 현재 고등학생인데, 로봇 관련 세계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계세요. 두 분이 현재 각 프로젝트에서 키를 잡고 설계를 하면서, 시연할 때 측정도 하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Q. 다른 연구기관이나 민간회사와 비교할 때 어비셜 항공우주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항공우주 분야에 큰 열정을 가진 젊은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이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우주발사체를 개발 중인 단체는 저희가 유일할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연구 역량도 가지고 있습니다. 로켓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신진 연구자들도 어비셜 항공우주의 자체 멘토링 프로그램과 교육을 통해 로켓 개발에 필요한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이 연구한 분야를 바탕으로 외부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등 연구자들이 학력이나 나이와는 관계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절차가 없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조직보다 신속하게 발사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아주 큰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배우려는 열정과 욕심이 매우 큰 것도 강점입니다.”

Q. 젊은 조직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네. 예전에 연소시험에서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적이 있는데요. 상황마다 다르긴 하지만 저희는 실패 원인을 분석해 문제의 원인을 찾은 후, 다음 설계에 보완해서 다시 시험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실패하면 누구나 그렇듯 진이 좀 빠지긴 하는데, 그래도 ‘로켓에서 나오는 불꽃 하나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금세 회복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희는 ‘우주에 로켓을 보내자’라는 신념 하나로 고등학생 및 대학생 중심으로 모여 있는 조직입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철없는 어린 학생들의 ‘로켓 장난’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와 같은 작은 한 걸음이 앞으로 우리나라 로켓산업의 위대한 한 걸음이 될 거라고 자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어비셜 항공우주는 저희의 꿈을 지지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